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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의인물

육영수(陸英修)

옥천의 인물 육영수

육영수(陸英修 : 1925 ~ 1974)

육영수 여사는 1925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에서 아버지 육종관씨와 어머니 이경령 여사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형제는 오빠인 육인수, 언니 육인순, 동생 육예수가 있었다.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시기 전 어머니 이경령 여사께서 꿈을 꾸셨는데 마당 안의 연못에서 큼직한 자라가 기어 나와 이경령 여사의 품에 덥석 안기는 바람에 엉겁결에 두 팔로 자라를 품에 안았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신 교동집은 삼정승집이라고 불렸다.

  이 집은 1600년대 김정승에 이어 송정승, 그리고 민정승이 살던 300년 이상 묵은 고가로서 옥천군 청성면 능월리에서 살던 아버지 육종관 씨는 1920년 당시로는 막대한 금액인 이만오백원의 돈을 주고 이 집을 사서 1921년 이른 봄 이곳으로 이사해 왔다.

  아버지가 소문난 부호로 부유한 가정에 있었으나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을 지녔다. 옥천읍내 죽향국민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배화여고를 졸업한 뒤 옥천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50년 전란으로 부산에 피난중일 때 육군중령 박정희와 혼인하여 슬하에 지만·근혜·근영 등 1남2녀를 두었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5.16군사 쿠테타를 주도하여 성공한 뒤 1963년 10.15 총선거에서 6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연임됨에 따라 대통령 부인으로 11년간 내조하였다. 검소한 안 살림과 우아한 품위로 대외적인 활약을 하였으며, 숨어서 남이 못하는 일을 많이 하여 덕망을 쌓았다.

  만년의 공직은 양지회 명예회장과 자연보존협회 총재였으나 평소 재야 여론을 수렴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말도 들었다. 남산에 어린이 회관을 설립하는가 하면, 서울 구의동 일대에 어린이 대공원을 조성하고 정수 기술직업훈련원 설립을 비롯하여 재해대책기름조성과 정신박약아 돕기 운동 등 그늘진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회복지사업에 분망한 일과를 보내었다.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창간과 서울대학교 기숙사 정영사를 건립하였다. 경향 각처의 여성회관 건립은 물론 연말마다 고아원·양로원을 위문하여 따뜻한 구호의 손길을 미쳤고, 1969년부터 전국에 87개소나 되는 음성나환자 정착촌을 만들어 재생의 길을 터주었다.

  세계적인 영부인으로서 또한 국모로서 부족함이 없는 너무나 휼륭하고 존경스러운 육영수 여사는 1974년 8.15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제29주년 광복절 기념식장 단상에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축사를 하시던 중 북한의 지령을 받은 저격범 문세광이 쏜 총탄에 머리 관통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5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생을 마쳤다.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에 희생양이 된 격이어서 애도 인파가 청와대에 연일 쇄도하였는데 국민장 영결식이 8월 19일 오전10시 중앙청 광장에서 각국 조문사절과 내외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고 이날 오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우리시대가 낳은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로서 이상적인 한국의 여인상을 국민의 가슴속에 심어놓고 간 것이다.

  육영수 여사의 동상은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여성회관 옆에 건립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8월 15일을 기하여 지역주민과 유족, 박사모 회원들과, 정수장학회 관계자, 박정희 대통령 고향분들께서 찾아와 추모행사를 가지고 있으며, 11월 29일에는 탄신일을 기념하는 숭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서 항상 소박하고 성실한 내조자로서 한국 주부상을 내외에 과시하고 나머지 삶의 시간 전부를 이 땅의 가엾은 동포들을 위한 사랑과 봉사에 바치다가 간 육여사의 죽음은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고귀한 죽음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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